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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보걷기

만 보 걷기 시작 2 - 마침내 시작했습니다!

by 블루이 2023. 8. 4.

 

 

만 보 걷기 시작 2 - 마침내 시작했습니다!

 

 

어디를 걸을지 미리 주변을 탐색해 두었습니다.

아무래도 길이 예쁜 곳이면 좋겠고, 차와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는 곳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농로를 따라 작은 하천이 있는 곳, 오리

제가 사는 곳은 아파트 촌과 농촌지역으로 나뉩니다.

서울 근교 도시라서 이런 게 가능한데요.

평소에는 아파트 촌도 걸어봤고

동네마다 있는 운동장 걷기도 해봤어요.

하지만 다 실패했습니다.

일주일을 넘겨본 적이 없었어요.

이 핑계 저 핑계로 나가기가 싫어지고

그러다보면 걷기를 까먹어버리게 되더라고요.

 

그때는 걷지 못했던 뭔가의 이유가 있었을 겁니다.

너무 바빴다거나,

눈에 띄는 소소한 아름다움 따위는 시시했거나,

아니면 외면했거나.

나이가 들어야 풀꽃이 아름다워 보이고

시들어 마당에 떨어진 부용화 꽃잎도 그리움으로 다가오거든요.

어린 시절 우리 집 마당에 피어 있던 부용화 생각이 나는 것은

지금이나 가능한 일이거든요.

 

머릿속에 어디를 걸을지 대충의 지도를 그려놓고

러닝화를 신고 대문을 나서봅니다.

 

단지를 빠져나가면 큰 도로가 나오고, 거기를 건너 1km쯤 걸어가면

논밭이 있는 평지가 나옵니다.

그곳을 지나 창고가 많은 동네를 한 바퀴 돌고

9홀짜리 골프장을 반환점으로 삼으면

얼추 6천 보가량은 됩니다.

돌아오는 길은 4천 보 정도.

이렇게 미리 안배해두면 걷는 것이 지루하지 않더군요.

 

가족과 지인은 첫날이니까 5천 보만 걸으라고 신신당부했습니다.

생전 운동이라고는 해본 적 없으니까

괜히 운동한답시고 무리하다가 몸이 탈 날 것이라고 걱정해 주는 겁니다.

저도 그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숨쉬기 말고는 제대로 운동이라고는 해본 적 없으니

몸이 놀라지 않도록 조심할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의외로 언덕길을 쉽게 넘고 내려갔습니다.

차들이 없는 곳을 걷기 시작하자

내가 걷고 있다는 것도 잊어버릴 만큼 걷는 것에 몰두하고 있었습니다.

걷기 앱을 깔지 않았다는 것이 떠올랐지만

그냥 걷기로 했습니다.

 

반환점으로 정해둔 골프장까지는 쉽게 갔습니다.

그쯤에서 약간 종아리가 뻐근해지더군요.

아마도 이건 보폭을 평소보다 넓게 하고

배에 바짝 힘을 주었고

빨리 걸으려고 했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 같았습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까 기분 좋아지는 아픔이었어요.

내 몸 안의 세포들은

주인이 자기들을 괴롭혀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아요.

 

처음에는 이렇게 반환점인 골프장까지

논밭길만을 걸었습니다.

일주일 정도 걸었더니 조금은 심심해지더라고요.

그래서 시골 동네를 한 바퀴 돌아서

사실 이 시골 마을은 예전부터 걸어가 보고 싶었습니다.

동네를 탐색하는 것은 내가 좋아하는 것 중의 하나이기는 하지만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 처지에서는 어떨까 싶어서 조심스러웠습니다.

그런데 한 번 가 보고 나니까

그분들의 삶을 엿볼 수는 없어요.

그게 오히려 편하더라고요.

 

요즘은 시골 동네도 옛날 집하고는 달라서 창문에도 두꺼운 창살이 달려 있고

집안을 들여다보지 못하도록 두꺼운 커튼을 쳤고요.

집도 시골집이라기보다는

개량한 개인 주택이라서 안을 들여다보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내가 동네를 지나면서 볼 수 있는 것은

골목길에 피어 있는 작은 꽃들, 커다란 스티로폼 상자에 심어놓은

상추와 시금치와 그곳에 물을 뿌리는 호스.

물을 뿌리고 난 뒤의 젖은 아스팔트 길과

가끔은 전신주에 올라가 뭔가를 수리하는

한전 직원들입니다.

이분들을 꽤 여러 번 마주친 것으로 보아서는

동네에 전기 문제가 여러 번 발생했던 모양이에요.

 

 

열무같아요. 아마도?

서울 근교의 소도시는 원래 농업이 주였어요.

논밭을 없애고 아파트를 지었고 해마다 아파트는 많아지고

논과 밭은 줄어들고 있죠.

이곳도 그렇습니다.

해마다 넓은 아파트는 새로 생기고 그만큼 논과 밭은 줄어들고 있고요.

 

논과 밭을 낀 마을은 특이할 정도로 정적입니다.

창고형 공장이 수십 개 있어서 차량이 드나들고 사람들의 움직임이 부산한데도

정적인 느낌이 듭니다.

 

음악도 듣지 않고 한 시간 30분 동안 만 보를 걸을 수 있는 것은

온전히 걷기에 집중하고

걷는 것을 행복하게 생각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틀, 사흘 정도는 힘들었지만, 하루 자고 일어나면 깨달았어요.

내 뱃살이 최소 몇 센티미터씩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요.

부수적으로 얻은 것이지만 이것도 행복한 일 중의 하나였습니다.

 

쭉 만보 걷기를 올릴 테니까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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